가상 투영 입자

가상 투영 입자는 생태학적 가치를 전시의 주제와 형식에 담아낸 전시 대지의 시간을 웹사이트를 통해 디지털 매질에 전환해 투영한다. 전시 지형의 모든 요소는 가상 원형 입자로 표현되고, 관객은 펼쳐진 광경을 자유롭게 부유하며 현실에 존재하는 경계와 중력을 소거한다. 이로써 미술관, 갤러리, 작품, 그리고 관객 사이의 공간적 위계는 사라지고, 장면 안에서 모든 요소는 동등해진다. 공생자로서 관객은 자신의 시점을 은유하는 중앙 원형 입자를 통해 장면의 일부가 된다. 전시장 환경에서는 작품의 배치와 반사 재질의 원형 구체를 통해 각 작품의 메시지와 그 생태적 관계를 구현했다면, 가상 투영 입자의 세계에서는 인근 작품과의 클러스터링, 그리고 원형 입자의 원근법으로 실존적 연결성을 내재한다.

기획·제작: 테크캡슐 × 민구홍 매뉴팩처링


대지의 시간

대지의 시간은 기후변화와 팬데믹 등 전 지구적 위기의 시대를 맞이해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떠오르고 있는 ‘생태학적 세계관’을 탐색하는 장으로서, ‘공생’, ‘연결’, ‘균형의 회복’을 지향하는 국내외 작가 16명의 작품과 아카이브를 선보인다. 김주리, 나현, 백정기, 서동주, 장민승, 정규동, 정소영 등 한국 작가들의 신작과 올라퍼 엘리아손, 장뤽 밀렌, 주세페 페노네,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히로시 스기모토 등 해외 작가들의 작품이 어우러져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상호 존중과 교감 속에서 파악하고,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며 공진화(供進化, co-evolution)하는 열린 공감대를 형성한다.

작품 내용만이 아니라 제작 과정과 전시장 구성에서도 생태학적 가치를 실현하려고 했다. 전시장 가벽을 없애 작품들이 서로 소통하도록 배치했고, 작품 사이사이에는 특수 재질로 제작한 세 가지 크기의 구체를 배치해 작품과 관객, 공간을 비추도록 했다. 이를 통해 전시 리듬을 형성하면서 유동성, 가변성, 연결성이라는 생태적 가치를 담고자 했다. 한편, 중앙홀에 자리한 한국 생태미술 아카이브에서는 1970년대 이후 한국 미술계가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한국 생태미술의 흐름을 일별할 수 있다. 임동식, 김보중, 정재철, 이경호 등 생태미술 작가들의 작품과 다양한 아카이브로 한국 생태미술을 압축적으로 소개한다.

인간중심적 관점을 극복하고 생태학적 사유와 실천을 모색하는 생태미술은 인류의 과거를 돌아보는 일인 동시에 동시대와 미래를 향해 열린 새로운 가능성이다. 대지의 시간은 동시대 미술가들의 신작과 대표작을 비롯해 한국 생태미술의 태동과 전개 과정을 보여주는 아카이브로 생태미술의 역사적 가치와 새로운 가능성을 살피며, 이로써 생명체는 물론 존재하는 모든 것의 ‘공동의 집’인 지구의 장대한 역사 속에 인간의 시간을 자리매김한다. 그리해 인간이 자신을 거대한 생태계의 일원이라고 자각할 때 비로소 뚜렷하게 나타나는 생태적 가치를 성찰하고자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제1전시실 및 중앙홀
2021년 11월 25일 – 2022년 2월 27일

전시 정보

한국 생태미술의 흐름과 현재

한국 생태미술의 흐름과 현재는 1970년대 한국 미술계에서 모더니즘과 기존 질서에 대한 새로움과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시도된 다양한 자연미술과 환경미술의 흐름 속에서 한국적 생태미학의 기원을 찾고 그 흐름을 추적하는 전시이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전 지구적 위기가 없었고 ‘생태’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았지만, 생태학적 법칙과 세계관을 내포하거나 실천한 의미 있는 작업과 작품, 단체들의 활동을 단체들의 활동을 수집·정리·분류해 한국의 생태미술사 기술을 위한 기반을 다지고자 했다.

담백한 흰 광목천을 바위에 둘러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되는 경지를 구현한 전국광의 수평선(1975)을 재현한 퍼포먼스 기록부터, 한국 생태미술의 맹아 임동식의 선사시대 다가가기(2004), 수집-리서치-기록의 과정을 바탕으로 수많은 경계를 탐험한 정재철의 프로젝트들, 도시의 숲을 걷는 경험을 확장된 회화로 구현하는 김보중의 작업들, 그리고 기후위기에 관한 적극적 발언을 담은 이경호의 영상은 각기 다른 영역의 생태미술이 가진 사유를 보여준다. 중앙홀 가운데에 자리한 아카이브는 한국 생태미술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주요 단체, 작가 및 전시 자료들을 그러모아 모두를 초대하는 열린 광장으로 기능한다. 이를 통해 한국 생태미술에 대한 주목도를 높이고, 이후 한국 생태미술 작업과 연구가 더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모든 생명의 오래된 시간

전시를 내용이나 형식에 따라 구분하는 가벽을 제거한 이벽 전시실은 작품과 관람객, 그리고 몇 개의 공들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작은 생태계이다. 전시는 자연을 타자화하며 인간중심적 시각을 학습해온 과정을 보여주는 정소영과 히로시 스기모토의 작업으로 시작한다. 지구의 장대한 역사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시간이란 작은 구간에 불과함을 성찰하게 하는 올라퍼 엘리아손과 김주리의 작업은 대지의 시간 속에서 인간을 가늠한다. 주세페 페노네의 대리석 조각은 표면에서 뻗어나오는 새로운 생명의 가능성을 암시하며 순환과 연결이라는 생명의 원리를 환기시킨다. 평생을 새와 교감하며 생활해 온 장뤽 밀렌은 그 시간을 새의 시점으로 기록했다. 여러 생물의 시각 인지 진화 과정을 연구한 서동주의 작업은 생명의 공통성과 개별성을 체험적으로 구현하며, ‘본다’라는 행위에 관한 연구는 자연색소로 인화한 백정기의 사진으로 이어진다. 나현은 대만 원주민에 관한 연구를 바탕으로 식물 사진과 선반 조형물을 선보이는데, 자연을 경외하며 서로의 영역을 지키는 원주민의 삶은 우리가 잃어버린 지혜와 방향성을 일깨운다.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영상에서 울리는 영혼의 종소리는 사람, 대지, 하늘,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요소가 하나가 되어 울리는 장관을 선사한다. OAA(정규동)는 촘촘하게 연결되어 서로 의지하는 기둥 구조로 조화, 균형, 존중과 배려에 관한 메시지를 전한다. 마지막으로 중앙홀의 블랙박스 안 360° 원형 스크린에는 대공원-동물원-경마장- 미술관을 주축으로 과천의 생태를 재해석한 장민승의 영화가 상영되는데, 근과거와 현재의 기록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와 방향성 모색으로 우리를 이끈다.

정소영

MMCA 이전 전시에 사용했다가 폐기될 예정이었던 진열장에서 신작의 구상을 시작했다. 인간은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자연을 측량하고 연구했지만 이 과정에서 자연은 타자화되어왔다. 미술관의 진열장은 그런 사고의 체계화, 대상화, 박제화의 산물이며, 분류체계에 대한 강박의 서사를 증거한다. 작가가 그간 지속해오던 해양과학 연구조사의 과정을 설치로 보여주는 미드나잇 존(Midnight Zone)은 미술관의 진열장과 영상 모니터, 조각 두 점으로 구성된다. 미술관의 진열장 속을 소금의 주성분이자 제설제로 쓰이는 염화나트륨을 채워 분절된 바다의 풍경을 형상화하고, 거제도 해양 시료 도서관에서 바다 속 광물과 자원을 수집, 체계화하는 연구 과정을 거쳐 분류된 해양 광물을 작가가 근접 촬영한 영상이 모니터에 드러난다. 구불거리고 겹쳐지고 늘어진 시공간을 구축한 조각 두 점은 심해의 수압을 오랜 시간 견뎌온 광물이 지상의 공간으로 옮겨져 전시될 때 광물의 현재성이 구부러지고 왜곡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히로시 스기모토

현대 사진의 거장인 작가는 흑백 사진 속에 공간의 시간성과 사유를 담아내는 작가다. 작가의 시리즈 중 비교적 덜 알려진 ‘디오라마’ 시리즈는 작가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작업한 것으로, 자연사 박물관에서 이국적 동물들의 생활 환경을 연출하고 박제한 동물을 설치해 북극, 아프리카, 원시림의 실제 장면을 들여다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입체 모형을 촬영한 것이다. 자연사 박물관의 디오라마는 우리가 쉽게 볼 수 없는 동물들과 주변 환경을 드러내 이해를 높이는 교육적 기능이 큰 반면, 인간 중심적으로 동물을 다뤄온 방식과 세대를 거듭하며 학습이 이어지는 현장이기도 하다. 스기모토가 담아낸 흑백의 디오라마 속 동물의 모습은 근대 이후 인간이 자연을 대한 관점을 보여주며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지식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던 중요한 가치에 대해 반문한다.

올라퍼 엘리아슨

자연현상과 인지감각에 대한 실험적 작품으로 잘 알려진 작가는 해수면 상승과 빙하 유실 등의 환경문제에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작품으로 연결시켜왔다. 2015년 선보인 시간 증폭기(Time Amplifier)는 표류목의 절단면에 열두 개의 홈을 파서 인간의 달력 시스템에 사용되는 12개월을 암시하고, 열한 개의 검은 돌과 한 개의 유리 구체를 올려둔 작업이다. 해당하는 달에 유리구체를 두고 나머지 달은 작은 검은 돌을 위치시켜 시간의 흐름과 현재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단순한 구성이지만 표류목은 시베리아나 아메리카 같은 멀리 떨어진 땅에서 해류에 의해 아이슬란드 해변으로 밀려왔고, 검은 작은 돌은 오랜 시간을 거쳐 바람과 파도에 의해 연마된 것으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오랜 시간의 흐름을 증명한다. 유리 구체 안쪽에는 거울면이 있어 관람객의 형상을 거꾸로 반사하는데, 이를 통해 우리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시간을 감각하는지를 경험하게 된다.

김주리

전시장의 한 공간을 차지한 거대한 흙 덩어리에 다가가면 물기를 머금은 상태의 흙 표면이 드러난다. 모습 某濕 Wet Matter_005은 사람, 사물, 자연의 겉모습을 단면적으로 호명하는 소통방식을 벗어나 무슨 형상인지 단언할 수 없지만 많은 의미가 함축적으로 내포된 ‘어떤 젖은 상태’ 자체를 보여준다. 압록강 하구 습지의 유연한 땅에서 시작된 ‘모습’ 작업은 생명을 환기하는 물과 오랜 시간을 거쳐 고운 흙입자가 되어 강바닥과 강가의 습지를 구성하는 흙을 주재료로 흙과 물이라는 기본 요소가 지닌 생명의 감각을 체현하고, 자연의 한 순간이자 순환의 일부로서 관계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많은 것들이 순간적으로 발화되고, 단순하게 정의되어 흘러가는 오늘날, 엄청난 시간 동안 풍화작용을 거쳐 무엇이라 명명할 수 없는 모호하고 거대한 형상의 흙 덩어리는 인간이 살기 이전의 모든 생명들이 시작된 긴 시간의 흐름 속에 관람객을 위치시킬 것이다.

주세페 페노네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작가는 나무, 대리석 등 주변 자연물을 통해 자연의 본질을 보여주는 작업으로 알려졌다. 돌의 몸 – 라미 Corpo di pietra – rami(2016)는 산업용으로 채석되고 가공되는 과정에서 버려진 대리석 표면에 드러난 자연의 패턴을 인체의 피부와 핏줄로 은유해, 새로운 싹이 트는 순간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이 작품은 약 40년 가까이 수많은 전시를 거치며 못질과 도색을 견뎌온 미술관 벽면의 흔적을 드러내는 프로타쥬(frottage) 작업 위에 설치되어, 전시장의 생태적 환경을 작품으로 끌어들인다. 흐릿한 경계 – 트레비아 Indistinti confine – Trebia(2012)는 대리석과 나무를 본뜬 브론즈 조각이 연결되어 자라나는 형상을 보여준다. 이 단순한 조각은 위계, 서열, 경계, 국경 등은 매우 인간적인 분류 체계이며, 자연은 서로의 영역을 지켜내며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거대한 하나의 생명체임을 말해준다.(대리석 조각 2점)

장 뤽 밀렌

자연을 벗 삼고 새와 교감하는 생활을 하는 은둔자인 작가는 순간을 포착하고 기록하는 사진의 속성을 이용해, 숲에서 새와 함께 생활하며 소통한 시간의 흐름을 담아낸다. 새는 야생의 동물 중에서 인간과 교감이 가능하고, 인간의 주변에서 함께 생활하는 존재다. 작고 민감한 새를 처음 만나고 몇 달 동안 서로의 안부를 묻고 관찰하는 시간은 천천히 섬세하게 흘러간다. 1987년작 No. 60, 1987 1월 2월No. 61, 1987 1월 2월은 눈이 내린 풍경 속 한쌍의 새를 각각 촬영했고 2005년~8년 촬영한 네 점의 사진도 각각의 풍경 속에서 작가와 교감한 새가 포착되어 있는데, 애완용이 아닌 야생의 새의 입장에서 두세 달의 기간 동안 편안한 환경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작가는 기꺼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 존재하고 끊임없이 기다렸다. 작가가 담아낸 새의 사진은 인간이 중심이 되어 대상으로서 촬영한 새를 보여주는 목적이 아니라, 삶의 동반자이자 친구인 새의 시점으로 바라본 세상의 모습을 공유하는 것이다.

백정기

작가는 물, 불, 식물, 대지 같은 자연물부터 세상을 구성하는 근본적 원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실험을 통해 작업한다. 이번 전시에는 두 가지 신작을 선보이는데 이즈오브 시리즈(ISOF Series)는 2011년부터 시작한 프로젝트로 자연을 향한 인간의 보편적인 시선을 ‘자연 풍경 사진’이라는 형식으로 접근했다. 인간이 제작하고 소비하는 자연 풍경 사진은 본질에서 멀어져 과장되게 아름답고 매혹적이다. 작가는 직접 촬영한 풍경 사진을 직접 자연물에서 추출한 색소로 인화해 실제 자연의 색상과 시간이 흘러가면서 ‘변화’하는 색을 통해 학습된 자연의 이미지가 아닌 실제 자연의 모습을 탐구한다. 두 번째 작업 육각부적은 점토를 건조시켜 갈라진 상태를 고정시켰다. 어느 문명에서나 물은 생존의 필수 요소였고, 농경 사회가 기반이었던 한국에서 물의 기운으로 비를 부르고 불의 기운을 억제하는 것은 중요한 의식이 되기도 했다. 6은 동양에서 물을 상징하는 숫자로 육각형의 타일로 제작된 갈라진 땅의 형상은 에폭시 투명 레진으로 촉촉한 모습으로 마감이 되었는데, 조선시대에 비를 부르고 불을 막기 위해 사용된 육각형 금속 부족에서 그 의미를 현대적으로 확장시켜 기후변화와 사막화를 목도하는 지금 작가의 육각부적이 갖는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OAA(정규동)

건축가 정규동은 우리 모두가 어디선가 떨어져 나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존재로 착각하며 살아가지만 여전히 우리는 무언가의 일부로 존재하고 모든 것은 인과율을 따르게 된다는 메시지를 건축의 언어로 풀어본다. 신작 인과율(Causality)은 건축에서 사용하는 ‘텐서그리티(Tensegrity)’에서 착안했다. 이 개념은 텐션(tension)과 인테그리티(integrity)의 합성어로 지난 수십년간 구조공학자 뿐 아니라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지금은 생물학 분야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안정적 공간 불륨을 만들어 내기 위해 불연속적인 압축재들이 일련의 연속된 인장재들과 상호 작용할 때 성립하며, 그 강성은 부재들간의 내부응력이 평형상태에 이를 때 얻어진다. 최소의 자원으로 최대의 구조적 효율을 얻어내는 이 원칙은 생물학적으로 볼 때 자연이 진화과정을 통해 선호해온 방식이기도 하다. 인과율의 세 기둥은 PET 재활용재와 실을 사용해 서로 연결되고 의지하는 유연한 구조를 이룬다.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2021년 7월 작고한 작가는 2014년 칠레의 아타카 사막에서 막대에 종을 매달아 바람에 소리를 내는 장면을 기록한 ‘아니미타스’ 시리즈를 시작했다. 이후 캐나다, 일본을 거쳐 2017년 이스라엘 사해 설치를 끝으로 시리즈는 마무리되었는데,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사해의 작은 영혼(Animitas Mères Mortes, 2018)는 시리즈의 마지막 작업이자 가장 최신작이다. 아니미타스는 인디언 원주민이 죽은 자를 기리기 위해 길가에 두는 제단 설치물을 일컫는 용어인데, 작가는 지구의 많은 곳을 유랑하며 광활한 대지에 긴 막대와 작은 종, 기원의 메시지를 매달아 바람을 타고 종소리가 울려퍼지는 하루의 시간을 기록했다. 작가는 우리 주변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있고, 이 종소리가 그 존재들을 구체화한다고 말했다. 일출부터 일몰까지 한 번에 촬영된 영상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풍경을 보여주고, 종소리는 ‘별의 음악과 떠다니는 영혼의 목소리’가 되어 전시장을 채운다. 이 ‘영혼의 음악’은 땅과 하늘과 사람, 그리고 보이지 않는 무수한 존재를 염원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준다.

나현

인류와 자연이 폭력에 노출된 곳에서 출발해 조사 연구 기반 작업을 하는 작가는 이번 신작의 연구 주제를 대만 고산족 원주민인 타로막족과 파이완족으로 삼았다. 인류 생존의 위기가 현실인 현재에 두 부족의 삶의 방식은 우리에게 희미해져버린 공존의 원칙을 상기시켜준다. 문명과 동떨어져서 원시적 삶의 방식을 유지하는 타로막족과 파이완족은 서로 이웃해 거주하는데 척박한 환경 속에서 자연을 경외하고 벗삼으며 ‘공존’과 ‘균형’의 원리를 실현하고 있다. 엄격한 금기와 규율도 자연과의 공존이 자신들의 생존 그 자체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머리 사냥꾼은 대만 원주민 전사를 의미하며, 상대방의 목을 베어 성인이 되었음을 인정하거나 용맹을 과시하던 전통인데 이들을 보고 서양인들이 ‘머리 사냥꾼’으로 불렀다. 작가의 머리 사냥꾼의 선반은 파이완족이 오년제(五年祭, Maljeveq) 의식에서 머리 대용으로 사용하는 구와 오브제로 구성된다. 작가는 이 제의가 단순히 용맹함을 과시하는 것을 넘어 척박한 환경 속에서 부족의 개체 수를 유지하는 냉혹한 방법 중 하나였다고 본다. 고산족들은 적의 머리를 베었지만 상대를 인간으로 존중하고 위로했으며, 희생자들 또한 신이 되어 자신들을 보호한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포모사 프로젝트 01-20은 작가가 해당지역에서 직접 채집한 식물 표본이다. 부족들이 삶을 위해 사용 및 제의적으로 기능한 식물들을 통해 자연과 인간에 대한 철학적 태도를 살펴볼 수 있다.

장민승

사진과 영상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는 과천의 현재 모습을 기록한 신작 대공원(大空圓, Carousel)을 선보인다. 88서울올림픽을 준비하며 1970년대 말부터 과천에는 동물원, 서울랜드, 미술관, 경마장이 들어설 계획이 세워졌고 관악산과 청계산이 아우르는 터 안에 하나씩 자리잡아 오늘날에 이르렀다. 1980년대부터 수도권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소풍이나 사생대회 등의 목적으로 어린이날이나 가족 나들이 목적지로 이곳을 찾아왔다. 다시 과천을 둘러본 작가는 관악산과 청계산이 거대한 원으로 보고, 그 속에서 여러 원형의 구역과 끊임없이 반복되는 원형의 구조를 생태학적 관점에서 분석했다. ‘비어 있는 큰 동그라미’라는 뜻으로 대공원을 해석한다면, 비우고 다시 돌아간다는 의미로 확장해 팬데믹 시대의 생태적 가치를 찾아볼 수 있다. 영상에는 수리 중인 다다익선, 서울랜드의 회전목마, 경마장의 경주마, 코끼리 열차, 원형전시실 등이 360도 원형 스크린에서 반복되며, 과천의 생태에서 비유한 현대사회의 생태학적 과제를 탐구하고 대안적 가치의 발견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서동주

인류학의 관점에서 미디어와 디자인 작업을 하는 작가는 비전(Vision)을 통해 긴 시간 동안 다양한 생명체의 ‘눈’이 진화한 과정을 연구하며 종의 다양성, 개별성, 공동성에 대한 공감각적 경험을 구현했다. 눈을 통해 세상의 정보를 습득하고 인지하는데, 시각 인지 과정은 작품의 구조로 환원되어 광학 물질로서의 빛과 수용체로서의 눈의 건축이 LED와 곡면 스크린에 투사된 영상으로 구축된다. 눈의 구조에 들어온 관람객은 AI 딥러닝 프로그램을 통해 학습된 다양한 생명체 눈의 모습이 생성, 변형, 진화하는 이미지와 빛과 자연의 모습이 다채롭게 투사되는 영상을 교차해 바라보며 우리가 빛을 통해 세상을 인지하고 그 데이터가 이미지로 처리되는 과정을 체험한다. 태양 광량 스펙트럼 데이터와 해양 색상 변화 데이터를 연동해서 생성되는 소리와 실제 녹음된 동물과 자연의 소리가 결합된 사운드 스케이프는 우리가 일상에서 듣지 못한 자연의 현상을 소리로 감각케 한다. 작품의 곡면 스크린 외관에는 햇빛을 이용한 인화 기법인 시아노타입 프린트로 제작된 시각인지 관련 패턴이 설치되어 시각의 진화부터 보는 행위에 대한 철학적 사유까지 깊이 있는 체험을 제공한다. LED 스크린 앞으로 다가간 관람객은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자신의 모습이 눈동자에 투명하게 반영되며 작은 시각신경으로 거대한 세상을 인지해 온 관습을 벗어나 거대한 눈에 관람객의 인체가 작게 투사되어 크기 위치가 전복되고 눈과 몸이 인간과 다른 생명체를 대면하게 한다.